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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연구

자극적인 떡밥과 뚜렷한 결말의 대립

by ㅁ륜ㅁ 2018. 11. 27.

- 신 호에로 펜! 31화 중 일부 내용. 이후에도 계속 인용-


 자극적인 떡밥과 뚜렷한 결말은 서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결말을 뚜렷하게 만들고자 할수록 복선과 타당성을 위한 설정이 쌓여 독자들이 앞으로의 전개를 추측할 수 있어서 뻔한 내용이 되고, 반대로 독자가 예상하지 못하도록 자극적인 떡밥을 남발한다면 작가마저 결말을 어떻게 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기승전결이 붕괴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명 소년만화 바쿠만에서는 작가와 편집자의 입장을 빌려 떡밥과 결말의 대립을 다룬다. 편집자 측은 당장 독자를 사로잡는 자극적인 전개를 선호하고, 이때문에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서사를 천천히 쌓아올리는 작품들은 당장 재미가 없으니까 뭘 해보기도 전에 끝나버린다. 그러면 작가들은 당장 독자들 관심을 사로잡아야 하니 정신나간 요소를 막 던져대서 그저 그때그때 더 자극적이게, 더 독자들 신경줄 태우게 만들기만 한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느냐는 뒷전이어서 점점 내용은 폭주하고, 결국 작가는 미쳐돌아가는 막장 줄거리를 감당하지 못해서 어거지 내용, 앞부분 줄거리와 모순되는 설정오류를 계속해서 내버린다. 결국 수습할 수 없는 선을 지나버린 만화는 쓰레기 결말을 맞이한다. 당장의 이익에 눈 먼 편집부의 독단이 작가들을, 작품을 죽이는 것이다.


-막나가는 전개로 인기를 끈 작품들은 대부분 그 대가로 막나가는 전개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말을 망쳐버린다.-



 그러나 반대로 작가 편의를 봐주자니, 당장 봐도 재미가 없는데 미래에 뭘 빵 터트릴 때까지 작품 안 내려놓고 꾸준히 보는 독자는 있겠는가? 그 미래에 빵 터트리는 절정부마저도 생각만큼 크게 터질 지 아니면 지지부진할 지도 잘 모르는데, 심지어 그런 정교한 줄거리를 작가가 생각해두고 있긴 하는 건지를 지금 입장에서는 알 수 없다. 그런 불확실한 작품을 지원해주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독자들 반응이 좋은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작품들을 챙기는게 더 합리적이다. 게다가, 만약 작가의 역량이 1류급이 된다면 나루토, 헌터X헌터와 같이 아무리 줄거리가 폭주해도 어느 정도는 수습할 수 있고, 그런 작가들은 막나가는 전개에 어떻게든 결말부에 앞에서 싸지른 떡밥을 회수해서 후반부에 빵 터트릴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극적인 작품이야말로 초반부도 후반부도 전부 재미있는 명작인 것이다. 결국 팔리는 작품, 명작은 재미있어야 하고, 편집부는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에 지나지 않다.


-기승전결을 챙겼다고 해서 만화가 재미있어지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독자와 작가를 불문하고, 재미있는 만화를 원한다.-



 일본만화는 본질적으로 규칙적으로 발행하는 잡지를 사주는 독자들의 돈으로 작가들을 먹여살리는 구조이고, 이에 따라 작품들의 경향은 최대한 오랫동안 연재해서 독자들이 계속 잡지를 사게끔 만드는 걸로 발달했다. 그렇기에 자극적인 전개로 독자들을 끌어모아야 당장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독자들은 이탈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신규 독자를 유입해야 하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만화, 새로운 만화가를 발굴해야 한다. 2018년 기준으로 슬램덩크, 러브히나를 실시간으로 보았던 사람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비중이 지금도 만화 잡지를 구매해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5등분의 신부를 읽고 있을까? 그런 사람들이 현재 만화 잡지 구매자 중에서 많다면 얼마나 많을까? 그렇기에 만화 잡지사, 특히 편집부는 당장 연재하는 작품을 봐주는 독자들 뿐만 아니라 미래에 연재할 작품, 미래에 유입할 독자들을 끊임없이 양성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차세대 원나블 작가와 독자들은 물이 흐르듯 연속적으로, 당장 생겨나는 경우가 드믈고 보통은 기존 독자들을 붙잡고 새로운 별이 떠오를 때까지 버텨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런 공백의 시기에 자극적이기만 한 작품들을 본 독자들은 데여서 "저 작가 작품 두 번 다시는 안 본다."와 같은 소리를 하면서 손절하고, 제 때에 새 작품, 새 만화가를 키워내지 못한 잡지사는 크나큰 재정적인 타격을 입고 폐간의 길을 걷게 된다. 이를 방지하려면 새로운 별이 뜨기 전까지 기존 독자들이 기존 작가의 '재미가 덜한' 차기작까지 구매하도록 유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줄거리가 지나치게 막나가는 것을 막고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만들어야, 후반부에 최대한 많은 떡밥이 해소되어 카타르시스를 주도록 해야 한다. 독자에게 있어 현재 작품의 아름다운 결말은 곧 새로운 작품의 시작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근육맨 2세 궁극의 초인 태그 25화 중. 원만한 세대 교체를 위해서는 대박은 못 치더라도 모두를 지켜낼 수 있는 간극의 구세주가 필요하다.-



 자극적인 떡밥이 줄 수 있는 당장의 임팩트도, 뚜렷한 결말이 주는 후반부의 카타르시스도 전부 만화 연재에 있어 중요하다. 시대의 흐름을 살아남은 명작은 전부 자극적인 떡밥과 뚜렷한 결말 둘 다를 품고 있기에 명작의 칭호를 얻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구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둘 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해야 하는가? 어쩌면 왕좌의 게임과 같이 자극적인 떡밥을 더 중시해서 등장인물들 목을 막 쳐낼 수 있고, 아니면 반지의 제왕과 같이 집요한 수준의 설정과 내용 전개를 추구하여 이보다 더 뚜렷할 수 없는 기승전결을 조각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품을 구상할 때 떡밥과 결말 둘 다를 고려하기만 한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떡밥은 나중에 가서 풀리라고 던지는 것이고 결말은 무수한 떡밥을 쌓아올려서 이르게 된다. 어느 한 쪽을 생각할 때 그것이 다른 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짝 떠오르기라도 하자. 그렇게 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 자극적인 떡밥과 뚜렷한 결말 둘 다를 같이 품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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