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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연구

독자를 이입하게 만드는 Save the Cat

by ㅁ륜ㅁ 2018. 11. 26.

Save the Cat은 블레이크 스나이더가 2005년에 쓴 영화각본 작법서인데, 이 책은 오직 하나, 할리우드 업계와 관객 둘 다한테 잘 팔리기 위한 각본을 쓰는 것에 올인합니다. 이를 위해 약 90분의 상영시간동안 영화가 어떤 순간에 어떤 전개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분 단위, 박자 단위로 매우 엄격하게 지정해서 알려주는가 하면 여기에 더해 영화 줄거리를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한 잔기술도 여럿 알려줍니다.

 

영화 줄거리에 있어서 여러가지 가능성을 전부 돈이 안 되는 것으로 일축하고 오직 하나의 전개만을 강요하기에, Save the Cat은 한편으로는 양판소마냥 판에 뜬 것만 같은 각본들밖에 양산해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수많은 영화들이 정말로 책에서 알려주는 큰 줄기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한다는게 증명되어서 책이 날개 돋힌 듯 잘 팔리고, 블레이크 스나이더도 스콧 맥클라우드 마냥 각본가로써가 아니라 끝내주는 작법서를 쓴 사람으로 더 알려졌습니다.

 

제목의 Save the Cat은 책에서 알려주는 잔기술의 예인데, 영화가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관객이 감정이입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초반부에 주인공이 차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해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서 주인공이 좀도둑 거렁뱅이이기만 하면 이입이 안 되니까 훔친 음식을 전부 가난한 어린이에게 양보하게 해주거나, 대놓고 남의 나라 유물을 훔치는 도굴꾼인 인디애나 존스가 영화 시작 3분만에 자기 배신하는 가이드의 친구를 이후 동굴에서 몇 차례씩이나 구해주는 장면이 Save the Cat의 예입니다.

 


-알라딘의 사례. 빵을 나눠준 아이들이 곧바로 귀족에게 채찍맞을 위기에 처하자 이를 막아서 알라딘은 그냥 도둑새끼애서 착한 도둑새끼로 일변한다.-

 

주인공이 대놓고 나쁜 사람일 때에도 Save the Cat 장면이 나옵니다. 펄프 픽션에서 사무엘 잭슨과 존 트라볼타가 연기하는 줄스와 빈센트는 첫 등장에서 시덥잖은 햄버거 타령을 해서 관객들에게 일상적인 인물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이런 친근한 옆집 아저씨들은 바로 직후 보스인 마르셀러스의 서류가방을 꽁친 새끼 처단한다고 성경구절을 외면서 권총을 난사해서 관객에게 크나큰 충격을 선사합니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 알렉스 드래지는 한국 일찐마냥 사람들 막 두들겨패고 장애인 만들고 강간해대는 인간쓰레기인데 자기 쫄따구가 클래식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추행하려니까 너 예절도 모르는 불한당이냐며 발끈해서 두들겨팹니다. 다음 장면에서는 집에서 아빠랑 사이 좋게 이야기까지 합니다. 비록 사람을 죽여도 양심의 가책보다는 감옥 갈 걱정을 하는 폐기물이지만 그에게 나름 인간다운 면모가 있음을 보여줘서 관객이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겁니다. 펄프픽션에서나 시계태엽 오렌지에서나 얘네가 구원할 수 없는 쓰레기라는게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제시되지만, Save the Cat은 관객이 저런 쓰레기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영화에 빠지도록 도와줍니다.

 

-펄프 픽션. 대마초 합법 썰, 외국 맥도날드 썰이나 푸는 아저씨 둘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사람을 무차별로 총질해서 죽입니다.-

 

허나 Save the Cat이 만능은 아닌게, 내용 전개에 있어 일괄적으로 적용한다면 영화는 너무 평면적인 인물들과 예측가능한 내용으로 가득차버려서 진부한 영화가 되어버립니다. 스타워즈 4편에서의 한솔로가 적에게 먼저 총을 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장면은 이후 1997년에 재개봉되면서 적이 먼저 쏘는 걸로 바뀌어버립니다. 조지 루카스 입장에서는 영화 2편이 지나면 레아 공주와 결혼하는 한 솔로가 말 막히면 총부터 쏘는 양아치인게 껄끄러우니까 Save the Cat 장면을 투입한 것이겠지만, 이로 인해 속물이었던 솔로가 선인으로 성장하는 서사가 삭제되어버렸습니다. 팬들은 입체적인 인물 한 솔로가 사라졌다고 여기겨 거센 비판을 하였고 스타워즈 프렌차이즈는 이후 20여 년이 넘도록 Han shot first 논란에 시달리게 됩니다.

 

-Han Shot First. 차가운 무법자로서의 솔로인가, 일말의 선은 지키는 야인으로서의 솔로인가.-

 

이야기가 있으면 관객은 작중 인물 중에서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습니다. 놀부가 있다면 착한 흥부가 있어야 하고 나쁜 두 형이 있다면 착한 막내가 있어야 합니다. Save the Cat은 비록 진부하고 뻔해빠진 '착한 주인공'을 양산하지만, 그런 뻔한 기술이 아직까지도 수많은 영화들과 수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야기를 쓰는 사람 모두가 이용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알아두기라도 해야 크게 도움이 될 거라 자신있게 자부합니다.

 

이거보다 더 자세한 내용이나 팁 같은 거는 책 Save the Cat에 적혀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매우 유명한 책이니까 왠만한 도서관에 다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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