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 연구

시선의 이동과 내용전개를 싱크로하기

by ㅁ륜ㅁ 2021. 1. 4.

페이지 만화는 한정된 크기의 지면에 모든 내용을 쑤셔넣어야 한다는 태생적인 제한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제한은 독자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만화만의 연출법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해당 글에서는 나이트 오브 리빙 캣과 원피스를 예시로 삼아 독자의 시선이 어떻게 만화에 몰입하게 만드는지 다루고자 한다.

 

-나이트 오브 리빙 캣 1화. 독자의 시선은 내용에 관성을 가져온다.-

 위 페이지 하나에서도 작가가 독자의 시선이동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그린 것이 보이는데,

우선 등장인물은 왼쪽으로 나아가고 있는게 첫번째 의도적인 선택이다. 일본 만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카메라의 이동과 등장인물의 이동에 모멘텀을 더해준다.

이를 염두에 두고 첫 줄에서 두번째 줄로 컷이 이동할 때 시선의 움직임을 빨간 줄로 덧그려보자.

-시선이 역행하는 것은 작품 내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깨트린다.-

독자의 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역행하는데, 이는 곧 작중 등장인물들이 나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간다.

이에 호응하여, 2컷 내의 인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돌린다. 독자 자신의 시선도 마찬가지로 반대를 향하기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이 고개를 돌리는 것에 몰입하게 된다.

즉, 작가는 독자가 시선을 반대 방향을 향하는 것과 인물의 움직임을 싱크로시킴으로써 해당 움직임에 더 크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시선이 역행하는 것은 카메라가 줌아웃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2번째 줄에서 3번째 줄로 향할 때, 똑같은 연출기법은 더욱 발전된 형태로 이어진다.

3컷의 말풍선에서 효과음->인물의 시선->충격->달려오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독자의 시선이 이어지는데, 이를 통해 독자는 우선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효과음)
컷 내 인물과 동시에 고개를 뒤로 돌린다.(이때부터 시선이 오른쪽을 향함)
뒤를 돌아본 인물은 달려오는 것의 정체를 보고 충격에 빠지며(충격 효과음)
이윽고 그게 바로 고양이였다는게 밝혀지는 식으로 괴물의 정체가 밝혀진다.

작가의 의도적인 배치로 시선을 따라 내러티브가 점차 발전하는 것이다.

 

-효과음은 그냥 빈 곳에 대충 박는게 아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을 해야 하는 건 독자의 시선이 효과음이 나오고 나서야 오른쪽을 향한다는 점이다. 만화가는 이를 염두해두고 인물의 위치를 3컷 말풍선보다 더 오른쪽에 놓았다.

 왜 굳이 저렇게 했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가 시선을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거랑 컷 내 인물이 뒤를 돌아보는 거랑 싱크로를 시키고, 이는 결과적으로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원피스 51화. 독자의 시선이 액션에 더하는 관성.-

 또다른 예시로는 원피스 극초반에 나온 롤로노아 조로와 쥬라클 미호크의 싸움이 있다. 이 짤막한 장면에도 작가는 독자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동선을 짜게 된다.

 

-말풍선과 효과음, 표정의 나열이 내러티브에 더하는 깊이.-

 1컷부터 보자. 나열된 요소를 정리하면 말풍선1 -> 효과음 -> 표정 -> 말풍선2가 있는데, 이는 독자의 시선을 따라 아래 내용으로 해석된다.

 

조로는 먼저 무표정한 얼굴로 "등짝의 상처는" 을 말하고, (말풍선1)

씨익 웃는 소리를 낸 뒤 (효과음)

카메라에서 조로의 웃는 표정을 잡아주고 (표정)

웃으면서 "검사의 수치다." 하고 말을 맺는다. (말풍선2)

 

 이러한 식으로 숙련된 작가는 의도적인 배치를 통해 1컷 내에서도 독자의 시선을 통해 내러티브를 보다 추가한다.

 

-시선이 더해주는 액션-

 2컷은 말풍선으로 시작하여 미호크의 얼굴이 만들어주는 화살표가 3컷의 칼베기로 이어지게 유도한다. 미호크의 참격을 따라 아래로 이어진 독자의 시선을 다시 위로 올라오고,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놀란 말풍선은 미호크가 조로를 베어버린 충격을 뒤늦게 전달한다.

 

-독자의 시선이 더해주는 관성과 충격-

 3컷에 나오는 참격만 따로 보자. 이는 왼쪽 위에서 출발해 대각선 아래로 내려가는데, 굳이 이러한 식으로 배치한 이유는 독자의 시선 역시 첫 줄에서 내려올 때 대각선 오른쪽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독자의 시선과 참격을 싱크로함으로써 독자가 공격에 느껴지는 충격량 또한 배로 늘어난다.

 

 

-180도 법칙을 어기면서까지 더할 수 있는 충격.-

 이는 해당 페이지를 전부 봤을 때 더 유력해지는데, 페이지 내에서 조로는 계속 오른편, 미호크는 계속 왼편에 있었는데 참격 순간에 둘의 위치가 서로 바뀐다. 영상에서는 180도 법칙이라고 해서 왼쪽에 나온 인물은 왼쪽, 오른쪽에 나온 인물은 굳이 오른쪽에 놓을 정도로 중요시하는데, 해당 컷에서는 의도적으로 이 법칙을 어기면서까지 충격량을 늘리는 선택을 내린 것이다.

 

-천진반과 손오공의 위치반전과 독자의 시선을 통해 강조되는 액션. 어디선가 많이 보지 않았는가?-

 이런 식으로 180도 법칙을 어기면서까지 독자의 시선을 따라 충격량을 더하는 연출법은 새로이 만들어진게 아니다. 한때 웹에서 많이 퍼진 드래곤볼의 컷연출 해설글(클릭)에서도 예시로 쓰인 만큼 역사와 전통이 쌓인 기법인 것이다.

 

 이와 같이, 페이지 만화는 독자의 시선을 통하여 내용에 한 층 더 깊이를 더하는 식으로 스스로만의 개성을 꽃피웠다. 그러면 혹자는 '그런데 이런 거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만화 읽는데 방해는 안되잖아요?' 하고 질문할 수 있다. 허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독자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은 만화는 매우 읽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 계속>

 

해당 사이트의 게시물은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용된 저작물을 다수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해당 사이트는 만화자료를 연구함으로써 독자에게 만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고 만화이론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며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아 대한민국 저작권법 제35조의 3(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에 부합하다고 판단합니다. 공적 이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자 한다면 다음 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law.go.kr/LSW//lsLawLinkInfo.do?lsJoLnkSeq=1000978849&chrClsCd=010202

 해당 사이트에 올라온 자료를 제3자가 이용함에 있어 공정 이용의 사유를 넘어설 경우, 원저작물의 저작권자로부터 허가를 구해야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