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 연구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밀리오는 왜 원포올을 못 받았는가?

by ㅁ륜ㅁ 2018. 12. 16.

물론 이런 식으로 작품 설정을 따져대는건 작가에게 불공평합니다. 주간연재로 몇 년을 연재하면 작가가 처음에 기획한 설정과 전개는 다 소진해버리거나 산으로 가버리기 일쑤고, 설정 정리하는데 일주일 중에 하루이틀밖에 쓸 수 없어서 조잡한 내용을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그려대기도 벅차니까요. 하지만 연재가 끝난 뒤 남는 것은 결과뿐이니 우리 한 번 결과를 보고 따져댑시다. 왜 밀리오는 원포올을 받지 못했을까요?

 

 이건 단순한 '전개 마음에 안 드네 빼애액' 하고 투정부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 구성에 있어 어떤 식으로 작가가 의도한 설정이 붕괴되고, 어떻게 하면 이런 설정 붕괴에 대처할 수 있나 공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한 해당 글은 독자가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히어로 인턴 에피소드를 읽어봤다는 가정 하에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주의요.

 

 

 

 







-소년점프에서 연재중인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주인공 미도리야 이즈쿠.-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에서 주인공 미도리야 이즈쿠는 모든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지니지 못한, 현실로 따지면 팔 하나가 없거나 눈이 안 보이는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최고의 영웅 올마이트를 만났고, 올마이트는 미도리야의 히어로서의 마음가짐을 높게 사서 최강의 신체강화 개성인 원포올을 계승시키는 것으로 모든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히어로의 마음가짐이라는게 미도리야가 가진 자신만의 절대적인 무기여서 모든 사람들은 미도리야의 영웅심에 감화하여 따르는 전개가 됩니다. 물론 주인공 보정으로 이거 말고도 신들린 분석력이나 각종 히어로 정보도 뇌에다 저장했지만 그건 그냥 민간인에 불과한 데쿠새끼가 힘 좀 얻었다고 깝치다가 순살당하는 거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 미도리야의 본질은 작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영웅의 마음가짐을 가졌다는 겁니다. 얘는 핵심 요소가 주인공으로서 마음가짐만큼은 다른 모두의 이상점이라는 겁니다.


-루밀리언, 토오카타 밀리오.-


 

 그런데 토오가타 밀리오라는 완벽한 상위호환이 등장하게 되면서 미도리야는 빛을 잃어요. 밀리오는 작중에서 가장 차세대 올마이트에 근접하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성과도, 성격도, 능력도 다 좋습니다. 개성도 개쓰레기 능력인 통과여서 미도리야처럼 남들보다 약자의 위치에서 시작했고, 심지어 원포올 같은 도핑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개성을 미치도록 단련해서 상대방 입에서 개쓰레기 소리 나오도록 만들 정도로 성장시켰습니다. 이에 더해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해서 실기간으로 자기 개성에 피드백해서 전투하니 미도리야의 분석력에서마저 더 뛰어난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의 하늘 아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고, 데쿠새끼보다 훨씬 더 밝게 빛나는 밀리오를 보고 눈부신 독자들은 의문심을 품게 되어요. 저렇게 미도리야보다 모든 부문에서 뛰어난 밀리오가 있는데, 게다가 원래는 밀리오가 원포올을 받을 수도 있었다는데, 그러면 밀리오가 정말 원포올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의문심은 점점 커져서 밀리오가 원포올을 받아야만 했다, 미도리야 장애인 새끼가 있어서 밀리오가 원포올을 뺏겨버렸다는 비난으로 성장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주인공과 완벽하게 똑같은 입장과 위치에 있는, 하지만 주인공보다 훨씬 더 뛰어난 존재가 있다면 얘가 왜 주인공이 아닌 거죠? 이 문제는 올마이트를 가져왔을 때 확실히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올마이트 역시 원포올 개성으로 간신히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을 뿐, 개성을 풀면 멸치처럼 바싹 말랐고 수시로 피를 토하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미도리야와 마찬가지로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작품 외적에서 올마이트가 멘토, 롤모델의 위치를 가지면서 노력가의 위치에 있는 미도리야와 차별화를 이룹니다. 그렇다면 밀리오는 어떤 차별점을 지녔죠? '데쿠는 개성이 없는 찐따지만 밀리오는 개성을 가졌다'는 좋은 차별점이 아닙니다, 개성의 유무는 이들의 작중 위치나 역할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까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128화 중. 이후 여러 에피소드 인용.-


 

 둘의 차이가 가장 극명한 부분, 작가가 가장 심혈을 들였을 부분은 히어로 인턴 첫 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같이 악당인 오버홀과 있는 어린 소녀 에리를 발견한 장면입니다. 이때 무턱대고 보스몹이랑 싸우려는 미도리야랑 달리 밀리오는 최대한 상황을 좋게 넘어가려고 하고, 에리가 눈치채고 싸움이 커지는 걸 막으려고 오버홀에게 돌아가자 직후 추적하려는 미도리야를 말리고 우선 돌아가서 어른 히어로랑 합류하자고 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 장면은 세 가지 이유로 중요한데, 각각을 나열하면

 

1. 초반에는 무턱대고 모든 사람을 구하려는 미도리야의 미숙함과 큰 흐름을 읽고 당장의 싸움을 피하는 밀리오의 원만함을 대비하고

 

2. 에리가 오버홀에게 학대당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와 함께 앞서 확립했던

미도리야의 미숙함은 모두를 구하고자 하는 영웅심으로, 밀리오의 원만함은 미온한 대처로 인한 실패로 뒤집히고

 

3. 몇십 화 후 보스전에서 간신히 에리를 구해놓았더니 에리는 첫 만남때와 마찬가지로

'싸움이 커지는 걸 막으려고 오버홀에게 돌아가는' 것을 반복해

밀리오의 행보가 단순한 실패를 넘어 영웅으로서 명백히 잘못된 길이었음을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작가가 의도했던 밀리오의 포지션을 추측할 수 있는데, 밀리오는 최선의 결과에 이르려 하지 않고 선을 긋는 타협하는 영웅상을 보여주려고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히어로로서의 이름도 전부를 구하는건 무리지만 백만 명 정도면 구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식으로, 올마이트의 All에 미치지 못하는 Million에 불과하니까요. 이렇게 되면 밀리오가 왜 원포올을 받지 못했는지가 명확해집니다. 작가가 의도한 토오가타 밀리오는 모두를 구해낸다는 이상점에 감히 도전하지 않고 '구할 수 있다고 스스로 여기는, 이룰 수 있는 목표에만 안주하는' 불완전한 영웅상을 가지고 있고, 이는 올마이트와 그를 계승한 미도리야 이즈쿠의 '그 어떠한 희생을 불사하고 모두를 구해내고자 노력하는' 완벽한 영웅상에 이르지 못합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밀리오는 원포올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했던 겁니다. 그는 확실히 구할 수 있는 백만명만을 챙기고 그 외 나머지 전부는 포기하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이런 의도와는 달리 밀리오가 절대로 타협하거나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에리와의 첫 만남에서 미도리야랑 달리 무턱대고 싸우지 않으려는 모습은 당장 구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를 희생하는 타협이라기보다는 힘을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신중함을 더 부각합니다. 이후 활약하는데도 밀리오는 능력을 잃어도 필사적으로 저항해서 에리를 지켜내는 등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영웅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기 능력의 한계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올마이트에 가장 근접한 사나이라는 칭호를 따낸 밀리오를 누구도 타협, 포기라는 키워드와 묶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백만은 전부가 아니라지만, 모든 사물을 뜻하는 단어인 만물도 일만 만(萬) 자를 쓰는데 이보다 백 배 큰 백만은 충분히 큰 숫자 아니겠습니까. 이런 묘사로 인해 밀리오는 모두를 구하는 거창한 목표를 포기하고 타협한 영웅이 아니라, 미도리야보다 더 신중해서 실수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완전히 똑같고 훨씬 뛰어난 인물로만 독자들의 눈에 비춰집니다. 

 

 작가는 밀리오와 미도리야를 차별화하는데 실패했고, 그 결과 주요 인물을 구상할 때 포지션을 겹치게 하지 않는다는 매우 간단하고 원론적인 규칙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밀리오를 더 나은 미도리야로 여기고 응당히 그에게 가야 했을 원포올을 장애인 데쿠새끼한테 뺏겼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포지션이 겹쳐진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면 발생하는 문제는 이처럼 각 인물에 대한 팬덤이 상대 팬덤이 빠는 인물을 공격하는 작품 외적인 문제와 함께 두 인물중 인기, 혹은 활용도가 적은 하나가 도태되어서 비중이 사라지는 내적인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해결책은 문제를 예방하는 방법과 발생한 뒤 대처하는 방법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9화 중.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밀리오의 신중함만을 부각한다.-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인물을 추가할 때 하나의 절차를 추가하면 됩니다. 해당 인물이 작품에서 지니는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고 첫 등장에서 오직 이 핵심가치 하나만을 보여주세요. 밀리오의 사례로 설명하자면 최초로 등장해서 주인공네 반에서 모의전을 할 때가 가장 좋고, 아니면 인턴 편에서 오버홀과 에리를 처음 만난 그 순간도 원래 작가가 의도한 핵심 장면인 만큼 "지금 오버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문제를 키우면 이를 빌미로 세력이 확장되고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그냥 보내줘야 한다." 하는 식으로 밀리오의 핵심인 타협과 포기를 보여주기가 좋았을 것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이나 유쾌한 성격이나 다 좋지만, 그가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성격을 어떻게든 집어넣고 이를 부각했더라면 추후에 밀리오가 타협하는 불완전한 영웅이라는 것을 부각하기가 더 수월했을 것입니다.


-대사 수정. 밀리오가 명백히 에리를 희생했음을 명시하여 그가 타협하는 인물상이라는 것을 확실히 함.-


 대련을 할 때 옷이 벗겨지는 개그 장면을 집어넣고 주변 인물이 태클을 걸면 "옷이 벗겨지는 희생으로 주인공네 반 모두를 수월히 이겼다." 같은 소리를 하거나 아니면 대련 중에 미도리야한테 피할 수도 있는 공격을 맞는 대신에 "만약 공격을 다 피하는데 집중했다면 숨이 흐트러져서 다른 놈들 견제하는게 힘들어졌을 수 있다. 그러면 한 방 정도는 희생해야겠지." 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후자의 경우 미도리야가 한 방 먹이는 걸로 주인공을 띄워주고 동시에 밀리오가 "니 주먹은 한 방 맞아도 됨" 이라고 판단할 분석력과 맷집이 있음을 보여주는 효과도 있고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캐릭터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첫 등장에서부터 분명히 제시한다면 이후 내용을 짤 때도 뇌리에 남아서 작가가 등장인물의 역할을 혼동하거나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예방가능하다면 문제가 발생할 일도 없겠죠. 그렇기에 작가는 손을 쓰는게 늦어서 새로 제시한 캐릭터가 이미 있는 인물과 완벽하게 포지션이 겹칠 때의 대처법도 알아야 합니다. 간단한 해결책은 늦게나마 캐릭터의 핵심가치를 의도한 대로 되돌리는게 되겠습니다. 그냥 캐릭터 성격을 원래 의도한 가치를 100% 반영하도록 바꾸세요. 밀리오로 치면 후반부에 오버홀 쫓아갈 때 혼자서 앞서나가는 대신에 안전을 위해 모두와 다 함께 느리게 간다던가, 오버홀 놈들한테 정신공격을 당했을 때 이걸 이겨내지 말고 "닥쳐!" 하고서는 미친듯이 싸우는 식으로 내용을 전개하는게 나았을 것입니다. 작품의 소소한 개연성을 희생하겠지만, 갑자기 달라진 캐릭터의 모습은 '사실은 알지 못했던 의외의 일면' 이라는 식으로 포장해서 두둔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미 의도했던 설정이 과거 연재분에 살짝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이를 전부 회상 방식으로 보여주고 캐릭터성의 갑작스런 변화는 작가가 실수를 수습하는게 아니라 과거부터 심어둔 떡밥을 폭발시킨 것이라고 둘러댈 수 있습니다.




 만약 포지션이 겹치는 캐릭터들 중에 미래에 활약이 없어도 되는 애가 있다면 우리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작가가 선택한 대처법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역할을 둘이나 가질 필요가 없으니, 필요없는 녀석을 장렬한 희생과 함께 작품에서 퇴장시켜버리세요. 파격적인 줄거리는 독자들을 자극해서 화제를 끌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퇴장하는 캐릭터는 단순한 상위호환에서 롤모델, 스승의 역할을 보이면서 남는 캐릭터에게 자기 한계를 깨닫게 해주거나 성장의 계기가 되어주거나 할 수 있습니다. 사라질 예정인 캐릭터의 팬덤을 생각해서 퇴장하는 방식은 최대한 화려하면서도 작품 내외로 뚜렷한 의미를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162화 중. 작가 역시 '밀리오가 원포올을 받아야 했다' 여론을 의식해서 확실히 매듭지었다.-

 

 나히아에서 밀리오를 퇴장시킬 때 작가는 그저 한 컷으로 "밀리오는 염증을 느껴서 학교를 그만뒀대" 하고 지나가는 방식으로 치우지 않고 오버홀 일당과 2:1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인질인 에리를 구출하고, 굳이 맞아도 되지 않는 치명적인 공격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처해서 맞는 영웅적인 모습을 빵빵 터트렸습니다. 이 점에 있어 작가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미도리야 상위호환'으로 굳어버린 밀리오의 캐릭터성을 받아들임으로써 화려하고 깔끔하게, 매우 훌륭히 캐릭터를 퇴장시켰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왕 미도리야랑 캐릭터가 겹쳐진 거, 밀리오가 에리를 구할 때 '미도리야라면 이러겠지' 하는 식으로 미도리야를 의식하고 또한 반대로 모든 사건이 끝난 뒤 미도리야도 '나라면 밀리오 선배처럼 개성을, 원포올을 포기하면서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식으로 밀리오를 의식하고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으면 더 없이 좋았을 것입니다.



-대사 수정. 이로써 마지막 컷 미도리야의 표정은 타인을 구하기 위해 원포올을 희생할 수 있을지의 고뇌를 담는다.-


 이로써 우리는 밀리오가 왜 원포올을 받지 못했는지, 작가가 의도한 캐릭터의 핵심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어떻게 내용이 꼬이는지, 그리고 포지션이 겹쳐버린 캐릭터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아봤습니다. 설정이 꼬이는 것은 모든 장기연재 작품의 숙명이기에, 해당 글을 통해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해당 사이트의 게시물은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용된 저작물을 다수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해당 사이트는 만화자료를 연구함으로써 독자에게 만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고 만화이론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며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아 대한민국 저작권법 제35조의 3(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에 부합하다고 판단합니다. 공적 이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자 한다면 다음 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law.go.kr/LSW//lsLawLinkInfo.do?lsJoLnkSeq=1000978849&chrClsCd=010202

 해당 사이트에 올라온 자료를 제3자가 이용함에 있어 공정 이용의 사유를 넘어설 경우, 원저작물의 저작권자로부터 허가를 구해야 합니다.

댓글